고대 이집트의 문명과 미술을 이야기 함에 있어 피라미드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 작품이다. 그저 단순히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그 존재와 역사적 가치가 거대하다. 아마도 이집트를 이야기하면 피라미드를, 피라미드를 이야기하면 자연스레 이집트를 떠올리게 되는 이들이 대부분일 정도니까. 하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은 피라미드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피라미드는 단순한 사각뿔 형태의 구조물이 아니라 파라오의 영생을 기원하며 쌓아 올린 무덤으로, 고대 이집트인들의 특색 있는 세계관과 사상을 오롯이 반영한 대표적인 유물이다.
피라미드의 변천
피라미드라고 하면 우리는 거대한 사각뿔의 건축물을 자동으로 떠올리는데, 처음부터 이런 형태였던 것은 아니다. 왕이나 귀족들의 무덤으로 만들어진 이 구족물은 처음에는 돌담이 둘러쳐진 모양의 마스타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이 마스타바 형태의 무덤은 피라미드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 이후 마스타바를 여러 개 겹쳐 쌓은 듯한 모습의 계단식 피라미드가 만들어졌고 훗날 우리가 알고 있는 피라미드의 모양이 그 위용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집트 고왕국 시대의 무덤 양식인 마스타바는 아랍어로 '긴 의자'를 뜻하며, 고대 왕국의 왕족과 귀족들의 분묘 형태이다. 전체적인 형태는 사각형의 내부로 경사가 있는 단의 모양을 가지고 있으며, 내부구조는 지하묘실과 수직통로, 제사실 그리고 죽은 이후에 머물러 있는 영혼을 위한 공간인 '세르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후 이런 마스타바가 쌓여서 만들어진 계단식 피라미드가 만들어졌는데 이 양식부터가 실질적으로 피라미드라 불리는 된 건축 양식이다.
계단식 피라미드는 말 그대로 피라미드의 외양이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형태의 것이다. 이집트 고왕국 중 제3 왕조의 초대 파라오인 조세르 왕의 '조세르의 피라미드'가 최초의 피라미드 형태의 무덤이며, 지금까지 전해지는 대표적인 계단식 피라미드로 알려져 있다. 이집트 사카라 지역에 위치한 조세르의 피라미드는 밑변이 120미터에 높이가 60미터에 달하는 규모로 우리 주변의 건물로 따지면 10층 건물 높이에 달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랫부분이 넓고 위로 갈수록 작아지는 모습이라 실제로 보면 같은 높이의 현대 건물보다 훨씬 크게 느껴진다고 한다.
이 조세르의 피라미드를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이는 조세르 왕 때 재상을 지낸 임호텝(Imhotep)이라는 사람인데, 고대 이집트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불릴 정도로 다재다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건축은 물론, 의술, 천문, 철학 등에도 능통했으며 후에는 농작물의 신과 질병 치유의 신으로 불리는 네페르튬(Nefertum)과 동일시되기도 하였다.
완벽한 사각뿔 형태의 대 피라미드는 카이로 인근의 기자 지역에 위치해 있는데, 가장 큰 것이 이집트 제4 왕조의 파라오인 쿠푸 왕의 피라미드로 추정하고 있다. 그다음에 있는 것이 쿠푸의 아들인 카프레 왕의 것이며, 가장 작은 것이 카프레 왕의 아들인 멘카우레 왕의 피라미드이다. 직계 가족 3대의 무덤을 함께 만든 것이 너무 유명해서 세 왕의 통치 시기를 '대 피라미드의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왕비들의 피라미드는 물론 여러 종류의 마스타바들까지 함께 모여있는 것을 보면 이곳은 고대 이집트인들의 거대한 묘지이자 성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가장 큰 쿠푸 왕의 피라미드는 바닥의 밑변이 230미터, 높이는 147미터로 현대의 40층 건물에 맞먹는 규모이다. 이렇게 엄청난 크기의 대 피라미드는 최초에는 겉면이 마감재로 처리되었고, 채색까지 되어있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에 의해 훼손되고 도굴이 되면서 원래의 찬란했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던 것이다.
기자의 대 피라미드를 더욱 빛나게 하는 유물로 스핑크스가 있다. 스핑크스의 발굴과 관련해서는 아주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스핑크스를 발굴한 사람은 누구일까? 역사가? 탐험가? 스핑크스를 발굴한 사람은 바로 이집트의 왕인 투트모세 4세이다. 신왕국의 이집트인이 1000여 년 전의 고왕국 시대의 유물을 발굴한 것이다. 그만큼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는 아주 오래전 인류의 유적임을 알 수 있다.
이 스핑크스의 앞에는 비석이 하나 있는데 이는 투트모세 4세는 남긴 기념비로 꿈의 석비(Dream stele)이다. 투트모세 4세가 왕위에 오르기 전 꿈을 꾸었는데 자신을 덮고 있는 모래를 치워주면 왕으로 만들어주겠다는 태양신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는 잠에서 깨어나 자리 밑의 모래를 파보았더니 스핑크스가 묻혀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투트모세 4세는 자기가 발굴한 태양신을 '지평선의 호루스'라고 명명하였다. 그러면 현대인들에게는 왜 스핑크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것일까? 그 비밀에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질투가 담겨 있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초기의 그리스인들은 이집트 문화를 경계하고 폄하하면서 그들의 열등감을 표현했는데, 스핑크스의 이름도 그 결과인 것으로 추측된다. 스핑크스는 그리스의 오이디푸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간 여자의 머리에 여러 짐승이 합쳐진 몸을 한 악마이다. 이런 대상을 피라미드 대표 유적에 이름으로 기록한 것은 상대 문화를 깎아내리기 위한 마음의 표출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어 보인다.
사실 피라미드라고 부르는 거대한 무덤의 이름도 고대 이집트의 신성문자에는 '메르'로 나와있다. 하지만 이는 1822년 샹폴리옹이 신성문자를 해독하고 난 후에난 알게 된 것이고, 그리스 사람들이 남긴 기록에는 이 거대한 구조물을 그냥 '삼각형 모양의 거대한 건축물이니 피라미드라고 부른다.'라고 쓰여있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불려 온 것이다. 다른 나라 문화에 대한 왜곡이 빛나는 이집트 문화를 깎아내리는 결과를 만들어버렸다.
그리스, 로마 등 유럽 중심의 세계관에서 바라보았을 때, 아프리카 대륙에 속한 이집트의 미술과 문화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그들로부터 많은 것이 유래되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을지 모른다.
'미술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대 이집트 미술, 람세스 2세와 카르나크 대신전 (0) | 2023.08.14 |
---|---|
고대 이집트 미술, 왕가의 계곡과 투탕카멘 (0) | 2023.08.13 |
고대 이집트 시대의 미술, 미라와 '영원히 살게 해주는 자' (0) | 2023.08.12 |
고대 이집트 시대의 미술, 정면성의 원리 (0) | 2023.08.08 |
고대 이집트 시대의 미술, 아부심벨 신전 (0) | 2023.0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