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 시대의 미술, 미라와 '영원히 살게 해주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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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야기

고대 이집트 시대의 미술, 미라와 '영원히 살게 해주는 자'

by DDing선생 2023.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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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조각가를 '영원히 살게 해주는 자'라고 불렀다고 한다.

 

정면성의 원리와 그리드를 활용해 완벽성을 추구했던 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목적이 대상의 영원을 기원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나일강이라는 지리적 특성을 통해 이집트인들은 인간의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사상을 가지게 되었던 것인데, 소위 말하는 내세(來世)를 믿었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이처럼 사람이 죽은 후에도 다시 영혼이 돌아온다고 생각했던 이들은 그 영혼이 돌아올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노력을 했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미라이다. 또한 죽은 사체의 유한성을 알고 있던 그들은 어떻게 하면 영원히 살 수 있을지 고민했으며 인체의 조각을 통해 영혼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믿었다. 조각품은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미라의 의미

미라는 각종 기록과 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인에게 잘 알려져 있는 반면, 신비로운 비밀에 싸여있는 것도 많다. 

미라를 제작한 이유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대 이집트인들의 사후관(死後觀)때문이다.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카, Ka)은 사후세계로 가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시체가 있던 곳으로 돌아와 되살아난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때에 돌아올 육신(하, Ha)이 온전해야 완전히 부활할 수 있다고 믿어 시체 보존에 대한 경험과 약학지식 등을 동원하여 시신을 방부 처리를 한 것이었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고대 이집트 미라, 출처: WIKIMEDIA.ORG/ WORLDHISTORYPICS.COM>

미라는 죽은 자의 몸에서 심장을 제외한 내부 장기를 꺼낸 후 다른 물질로 시신 안을 채웠는데, 사회 상류층은 송진과 향료를 섞어 넣었고 하층민은 톱밥이나 돌덩이를 넣은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탄산나트륨을 이용해 몸을 건조하고 아마포로 감은 후 관에 넣으면 마무리가 되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생각을 뇌로 하는 게 아니라 심장으로 한다고 생각했고, 사후 지하에서 오시리스가 저울에 심장을 달아 선악을 판별하고 저승 또는 천국으로 보내는 증거로 삼는다고 믿었다. 따라서 심장은 가장 중요한 장기여서 꺼낸 다음 따로 붕대로 싸서 다시 넣거나 실로 꿰맸다고 한다. 형이상학적 무늬를 띠며 아마포가 묶인 미라의 모습을 보면서 이를 대하는 이집트인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미라를 제작했던 이유는 죽은 자의 영혼이 자신의 몸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그들의 생과 사에 대한 세계관에 기인한다고 했다. 그렇다 보니 '어떻게 하면 육체를 썩지 않고 보관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미라가 탄생된 것이다. 죽는 것과 사는 것의 경계가 모호했던 그들의 사상이 잘 드러만 고민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미라의 저주' 등 고대 이집트 미라에 대한 일부의 편향된 해석으로 그 가치와 의미에 대한 오해가 있기도 하지만, 앞서 본 사실들을 통해 미라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내세사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산임을 알 수 있다.

 

영혼의 안식처, 조각품

고대 이집트 사람들의 내세 사상의 결과물은 미라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죽음을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보며, 이로 인해 많은 조각품이 부활과 윤회를 상징하거나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라호테프와 네페르트 조각, 출처: CPORTAL>

고대 왕국의 라호테프 왕자와 그의 아내인 네페르트의 조각은 고대 이집트의 조각 가운데에서도 채색이 가장 아름답고 완전하게 남은 작품으로 손꼽힌다. 기원전 2570년경 제4왕조 초기에 제작된 추정되는 이 작품은 높이는 약 1미터 20센티미터이며 그들의 사회적 지위에 어울리는 우미하고 화려한 부부상이다. 두 개의 상은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발굴되었으나 제작 시에는 하나로 만들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각이나 채색의 수준이 지금 봐도 높은 것을 알 수 있는데 특히 유리알이나 보석으로 제작된 눈의 표현 방식은 실제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라고 한다.

이런 조각품들은 최대한 실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려 노력했으며 이들의 영혼이 담겨 영원한 삶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 훼손되지 않도록 많이 장치가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서있는 모습을 조각한 '라노페르의 조각'과 같은 입상은 위의 라호테프와 네페르트 조각과 같은 좌상에 비해 상처를 입을 확률이 높았음을 고려해서 등과 발을 돌덩이에 붙여서 남겨둔 부조의 형식을 유지했음을 볼 수 있다. 등 뒤에 돌로 된 받침대를 남겨두고 바닥도 넓은 돌을 붙여둠으로 팔, 다리, 머리 등이 부러지거나 깨지는 것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를 취했던 것이다. 살아있던 모습을 최대한 만들고 보전하기 위해 이들의 노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고대 이집트의 조각품을 통해 내세에 대한 기대와 영원한 삶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림과 조각을 통해 영생을

회화와 조각을 함께 살펴보고 나니 조금은 이상한 점이 보인다.

 

고대 이집트의 미술작품 활동에는 내세사상이 깃들어 있다고 했는데, 그들의 그림은 개성을 철저히 배제하고 규칙에 맞춰 그렸던 반면 조각은 인물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을 볼 수 있다. 똑같은 죽은 이후 영혼을 담고자 했던 작품 활동인데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 이는 고대 이집트의 회화 작품들은 그 대상을 존중하고 그 작품 속에 내세사상으로 담고자 함과 동시에 글자와 비슷한 기록의 매체로 사용된 반면, 조각은 각 대상의 영혼이 오롯이 안식할 수 있는 매체로 여겨졌기 때문에 최대한 그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회화는 글자를 대신한 기록물인 반면 조각은 마치 자신들의 복제인간을 만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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