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된 고대 이집트의 미술 작품을 보면 사람들의 몸이 어색하게 그려진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얼굴은 측면, 눈은 정면, 상체도 정면을 바라보는데 하체는 다시 측면을 바라보게 그려져 있다. 이를 정면성의 원리라고 하는데 고대 이집트인들이 각종 미술작품을 만들며 인체를 표현할 때 적용한 방식이다. 이 정면성의 원리에는 단지 사물을 표현하는 미술작품이 아니라 고대 이집트인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정면성의 원리
그렇다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왜 이렇게 사람들을 어색하게 보이도록 그림을 그렸을까?
그들이 추구했던 정면성의 원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잘 묘사하고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보기 좋은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려 하는 대상의 본질을 생각하고 나아가 그림에 그려진 대상이 영원한 삶을 살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면성의 원리에는 완벽함을 추구했다는 점이 담겨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잘 그린 그림(특히, 서양화)은 내 눈에 보이는 3차원적인 모습을 2차원적인 평면에 어떻게 잘 옮길 수 있느냐로 판단한다. 이는 수세기의 역사를 거치면서 수많은 논란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그렇게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평면에 사물을 담근 것은 눈의 착시를 이용한 기술이며, 실제로 공간상에 있는 모습을 평면적으로 그대로 옮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과정과 결과에 많은 부분이 왜곡된다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렇게 본질이 훼손되는 것을 피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이나 그 사람이 속한 세계를 그대로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볼 때마다 달라지는 모습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이렇게 그린다.', '매는 이렇게 그린다' 등의 일정한 규칙을 정해놓고 그 규칙에 따르도록 했던 것이다. 이미 정해진 원칙에 따라 대상을 표현만 했던 것이다. 정면성의 원리는 대부분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는데, 다른 사물들도 그 본질을 표현하기 위한 규칙은 별도로 정해져 있었다.
정면성의 원리에 따라 그려진 그림은 그 시대의 지위고하, 즉 신분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기도 한다. 왕이나 높은 지위의 이들은 철저하게 정면성의 원리에 따라 그려진 것을 보여주는 반면, '네바문의 무덤 벽화'에 그려진 악사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낮은 신분의 이들은 정면성의 원리를 따르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또 '나르메르 왕의 팔레트'에서 보면 나르메르 왕은 철저히 정면성의 원리를 따라 크게 그려진 반면, 그 옆에 작게 그려진 왕의 신발을 들고 있는 비서실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신체적으로 체구가 작은 사람을 그린 모습이 아니라 신분이 낮은 사람을 묘사한 것으로 작품 속 사람의 크기에 따라서도 신분의 차이를 표현한 것을 볼 수 있다.
중요한 존재에게는 그들의 죽음 이후까지 위하는 마음을 담은 작품을, 그렇지 않은 이들은 단순히 겉모습만 그려내거나 그림의 크기를 차별화한 고대 이집트인들의 작품을 보면 그 사회가 얼마나 철저한 계급 사회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철저하게 계산된 그림
고대 이집트의 작품들이 하나 같이 유사하게 보이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그리드(격자무늬)에 맞춰서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바둑판 모양처럼 정방형의 사각형이 연속된 것으로, 그 사각형의 개수에 맞춰서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대부분의 고대 이집트의 그림은 이 그리드의 원칙에 맞춰 그려졌는데, 발끝에서 눈까지의 그리드 개수가 일정하게 정해져 있었다. 초기에는 열여덟 칸에서 후기로 하면 열아홉 칸 또는 스무 칸까지로 늘어났는데, 최대 스물한 칸까지 그리드를 늘려서 제작된 그림도 발견되었다. 또 발의 길이는 3칸, 손은 1칸을 기준으로 하는 등 모든 신체 부위의 비율이 정해져 있었다. 그리드의 크기를 줄이면 그림 크기가 작아지면서 사람의 키도 작아졌겠지만, 신체의 비율은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드에 맞춰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헤시라의 초상>에서 보면 헤시라의 발부터 눈까지 열여덟 칸인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이 작품이 초기 이집트에 제작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그리드에 맞춰 신체의 비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 또한 이집트 사람들이 고집스럽게 고수했던 완벽함에 따른 기준이었다. 이들이 이렇게 완벽을 추구하게 된 배경에는 나일강이 주기적으로 범람하는 이집트의 지리적 특성도 어느 정도 기여했다. 강의 범람으로 땅의 경계가 허물어짐이 반복되어 매년 토지를 다시 구획해야 했고, 그에 따라 자연히 측량 기술이 발달했다. 또 그 결과를 기록하는 기술 또한 나라와 백성들의 생존을 좌우하는 중요하게 되었다(그래서 서기가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측정과 기록은 이집트인들의 미술에 완벽함을 추구하게 힘을 보태었고, 삶과 죽음에 대한 이들의 사상이 합쳐 그들의 유산으로 남아 전해지는 것이다.
생과 사 그리고 미술
앞서 나일강을 통해서도 알아보았듯이 고대 이집트인들이 생명과 죽음의 경계가 낮았고, 죽은 이들의 영혼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음을 이들의 미술작품을 통해서도 알게 되었다. 이처럼 정면성의 원리와 그리드를 통해 그들은 완벽한 인간의 모습을 만들어내길 원했고, 그 그림 속에도 대상의 영혼이 남아있으며, 그들이 영원히 살아갈 것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긴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고대 이집트인들 내세에 대한 사상은 벽화와 그림에서 뿐만 아니라, 건축, 조각, 장신구 등 다양한 유물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집트에서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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