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파라오, 람세스 2세
투탕카멘 이후에 왕들이 대부분 단명하는 시기를 거친 후, 고대 이집트 신왕국 제19 왕조 3대 파라오로 람세스 2세가 등장한다. 고대 이집트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파라오 중에 한 명으로 손꼽히는 그는 26세인 기원전 1290년에 즉위하여 무려 64년간 왕으로 재임하여 90세가 되는 기원전 1223년까지 왕위를 이어갔다. 그가 통치하는 동안 주변국 정벌을 통해 영토를 상당히 확장하였는데, 현재의 이집트 영토는 물론, 시나이반도를 넘어 이스라엘, 시리아, 터키 근처까지 국경을 확장하였다.
람세스 2세는 이런 영토 확장정책과 함께 높은 외교적 조치도 보였는데, 팔레스타인 땅을 사이에 두고 오랫동안 세력 다툼을 벌였던 히타이트와는 평화협정을 맺고 50년 동안 전쟁을 중단하는 외교력과 결단을 보여주기도 했다.
많은 학자들에 따르면 구약성경의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파라오'가 람세스 2세라고 한다. 정확한 기록이 있거나 역사적 사실을 확인할 수 없어서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솔로몬 왕의 기록과 출애굽기의 기록 등을 볼 때 사실일 확률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십계'와 같은 출애굽기와 관련된 영화 등에는 람세스 2세가 '그' 파라오로 묘사되어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는 건축왕이라고 까지 불리며 토목과 건축물을 비롯한 역사에 길이 남을 다양한 유산을 남기기도 하였다. 파라오로 즉위한 직후에 시리아 원정을 기획하면서 그 전진기지로 나일강 삼각주 북쪽에 신도시인 피람세스(Per-Ramesesu)를 조성하고 천도까지 하였다. 인구가 최대 30만 명까지 늘어나며 100여 년이 넘게 번영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또 룩소르에 위치한 라메세움(Ramesseum)은 람세스 2세가 자신을 위한 장례 신전으로 만든 건축물이다. 그리스어로 '람세스의 신전'이라는 의미의 라메세움은 20여 년에 걸친 긴 공사 기간 끝에 완공되었는데, 당시 이집트에서 가장 화려한 신전이라고 칭송받았다. 하지만 람세스 2세가 죽은 이후 신왕국 자체가 서서히 쇠퇴하면서 라메세움도 화려함을 잃어갔다. 이집트 왕조가 무너지며 라메세움도 철저히 약탈되었고 로마와 이슬람의 침략기를 거치며 라메세움은 폐허로 전락했다. 이집트 신왕조의 흥망성쇠와 함께 한 유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앞서 블로그에서 함께 보았던, 람세스 2세가 누비아를 정복하고 세웠던 아부심벨 신전과 함께 카르나크 대신전은 람세스 2세가 건립한 최고의 유물로 손꼽을만하다.
카르나크 대신전
카르나크 대신전은 이집트 남부 룩소르의 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지면적만 7만 8000평에 달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유적지이다. 카르나크 대신전은 고대 이집트는 물론 현재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넓은 종교 시설 중 하나로서 여러 신을 모실 수 있는 신전과 사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카르나크'란 옛 테베의 북쪽 절반을 지칭하는 지명으로, 아몬 대신전을 중심으로 몬트, 무트 신전 등 총 세 신전으로 구성된 신전군과 역대 파라오를 모신 사원들을 모두 모아놓은 이곳을 카르나크 대신전이라 한다. 다만 몬트 신전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무트 신전 역시 일부만 잔존한다.
카르나크 대신전은 처음부터 이렇게 거대한 규모로 지어진 것은 아니다. 최초에는 작은 신전만 있었는데 여러 파라오가 대를 거치며 신전을 둘러싼 대문과 건물이 추가되면서 지금과 같은 웅장한 모습이 된 것이다.
카르나크 대신전이 처음 지어진 것은 중왕국 시절이었으나, 그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신전이었다. 신왕조인 제18 왕조에 들어서 아멘호테프 1세 등 많은 파라오에 의해 대규모 증축 작업을 거치며 이집트 종교의 최고 중심지이자 최대 규모의 사원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제19 왕조에 들어서는 폭발적인 확장을 하게 되는 데에는 대대적으로 복원하고 증축시킴으로써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시킨 람세스 2세의 공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건축왕이라고까지 불렸던 그는 이 대신전을 공사하는 데에 진심이었으며 자신의 업적을 새긴 기념비와 벽화도 이곳에 많이 남겼다.
위 아몬 대신전의 열주전 사진을 보더라도 카르나크 대신전의 규모와 예술적 수준은 보는 사람을 압도하고 현대인들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이 대신전에는 이런 기둥이 무려 134개에 달하는데 그 높이가 24미터에 이르는 6층 건물 높이이며, 각 기둥에는 저마다 다른 그림과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대부분이 파라오의 업적에 대한 기록을 새긴 것이다(야간에 레이저쇼로 보면 더 멋있다고 한다).
또 신전 내부에 남아있는 돌로 만든 창살을 보면, 어지간한 가공실력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멋진 작품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이집트 사람들은 돌의 결을 볼 줄 안다고 한다). 많은 학자들은 과거에는 이 건물들에 천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돌창살 사이로 빛이 비치는 광경이 얼마나 신비로웠을까?
또 아문 신전의 입구로 안내하는 '스핑크스의 길'의 양쪽에는 아문신의 상징인 숫양을 조각하여 신전의 신비감을 더 높이는데,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신전의 중앙 뜰과 제실로 갈 수 있다.
신전의 표준 양식
이집트 회화에 그리드라는 표준 지침이 있었다면 신전을 만드는 데에도 표준 구도가 있었다. 우선 필론이라는 거대한 탑문이 가장 먼저 보이는데 그 앞으로 오벨리스크를 세웠다. 오벨리스크는 30~40미터의 거대한 돌을 통째로 깎아 세웠는데 조금만 실수가 있으면 큰 돌을 버리고 새로 깎았다고 한다. 오벨리스크 앞으로 깃발을 세웠는데 오벨리스크와 깃발을 양쪽으로 설치하면서 신전의 좌우대칭을 맞추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벨리스크를 지나 신전 안으로 들어가면 천장이 뚫려 있는 중앙 뜰이 나오고 그곳을 지나면 하이포스타일 홀이라는 열주전, 기둥의 방이 나온다. 이 방을 지나면 제실이 등장하는데, 그 제실에는 해당 신전을 지은 파라오의 조각상이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이 제실을 기독교과 불교 등에서와 같이 기도를 하는 공간은 아니었으며 신을 직접 만나러 가는, 지상의 천국과 같은 초월적 공간이었다.
신전은 각 공간마다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필론은 산, 중앙의 뜰은 하늘, 기둥들로 채워진 열주전은 숲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담은 신전은 우주를 표현했던 것이다. 이렇게 자연 친화적인 표현을 통해 자신들의 신앙을 담아낸 신전은 고대 이집트 미술의 집합체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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