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미술에 담긴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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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야기

원시미술에 담긴 의미

by DDing선생 2023.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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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기시대 원시미술의 의미

석기시대 원시미술은 인류의 예술적 진화의 첫 발자취를 의미한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동굴벽에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만들어 자연과 자신들의 생활 그리고 신앙과 같은 영적인 부분 등 다양한 주제를 표현했으며 천연적인 물질을 가공하여 예술적인 창작물을 만들어내어 인간이 예로부터 창의성과 상상력을 보여왔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여가시간을 활용해 취미 삼아한 미술활동으로 볼 수는 없으며, 다양한 목적으로 힘들고 고된 작업을 거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 결과물 또한 현대 미술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것은 거장 피카소가 이야기했던 "인류가 2만 년 동안 나아진 게 없구나"라는 탄식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동굴 벽화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그들이 잡고 싶어 하는 사냥감을 기원하는 기록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의미를 담은 작품일까?

 

동굴 벽화의 의의

석기시대 동굴벽화는 그들의 생활과 환경을 그림으로 남긴 가장 뚜렷한 예술 형태로 손꼽힌다. 많은 벽화들이 동물과 인간의 모습을 단독 혹은 함께 있는 모습들을 보여주며, 선사시대 사람들이 동물과 가까이 있어 왔고, 그들의 생활과 생존에 동물들이 많은 것을 좌우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많은 연구자들은 벽화에 남은 동물들이 그 시대 사람들이 사냥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담아 그린 그림 또는, 그들이 잡은 것들에 대한 성취의 결과를 담았다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그 시대 사람들이 뿌리 깊은 예술적 욕망이 있었으며 그 대상이 동물이었고, 이 들과 상당한 상호작용이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에서 발견된 오록스와 말 등 동물의 그림들에서 볼 수 있듯이 사냥의 중요성과 생존을 상징성 그리고 이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학자들은 동굴벽화에 그려진 동물들이 단순히 사냥의 대상 또는 그 결과에 대한 표식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해석하고 있다. 구체적인 기록과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 선사시대임을 감안하면 수만 년 전에 그려진 그림에 대해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현대의 구석기인으로 불리는 남아프리카의 산족의 모습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부시맨으로 잘 알려진 산족은 아직도 석기시대의 생활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로서 수 만년 전의 벽화와 유사한 미술작품을 그린다. 산족 사람들이 설명하는 그들의 그림은 자신들의 추구하는 세계관 또는 역사를 그린 것과 같다고 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소를 잡는 형상의 그림을 그리고 이런 행위를 기우제라고 한다. 여기에서 소는 비를 상징하는 인 것이다.

 

이는 우리 단군신화에 출현하는 곰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다. 우리 민족의 시초인 단군을 낳은 이가 웅녀’, 바로 곰인 것은 우리가 곰의 자손이라는 것을 상징한다. 이는 신화가 사실이냐는 여부보다는 곰의 특성 즉, 우리 민족이 우직하고 참을성 있는 모습을 지향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벽화에 그려진 동물들도 그 시대 사람들이 신적인 대상으로 삼는 동물이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처럼 주술적인 의미로서의 동굴벽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동굴벽화를 통해 원시시대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그들의 신념을 엿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벽화는 누가 그렸을까?

이렇게 볼 때 동굴의 벽화를 그린 주체는 일반적인 대중이나 전문적인 화가이기보다는 그 사회에서 중요한 지위나 역할을 맡은 사람이었을 확률이 높다. 쇼베 동굴에서의 곰과 사자의 벽화 그리고 제단 위에 올려진 곰의 머리뼈에서 볼 수 있듯이 벽화가 그려진 동굴은 생활공간이라기보다는 신성한 공간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런 곳에서 무리를 이끌고, 제사를 주관하고, 그림을 그렸을 것으로 추정하는 사람은 주술사이다.

 

고대 사회에서는 왕이 곧 주술사였는데, 이는 이집트의 파라오나 중국의 천자도 통치와 제례를 함께 관장했던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그 사회의 주요한 책무가 한 사람에게 집중되고, 그 사람의 주요한 업무가 현세를 통치하는 것을 넘어 군중의 정신적인 부분을 관장하는 주술과 그에 따른 미술 활동에까지 이르렀다고 보는 것이 가능하다.

 

원시미술의 의미와 이집트 미술로의 연결

원시미술이라 하면 단지 동굴의 벽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서울 암사동에서 발견된 바 있는 빗살무늬토기 같은 경우, 곡식을 담았던 용기로서의 용도로 보는 것과 동시에 빗살 무늬를 장식한 미술작품으로 보는 복합적인 시각에서도 알 수 있다. 그냥 곡식이나 물을 담기 위한 용도로 사용했다면 정성스럽게 빗살무늬를 한 땀 한 땀 그리는 수고를 드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이 토기를 통해 자신의 미적인 표현과 해석하기 어려운 의미를 담아냈을 것으로 추측한다. 또한, 미술과 생활이 별개가 아니면 공존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짐작하게 한다.

<빗살무늬토기, 출처:위키백과>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 지역에서 발견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비롯해 세계 유적지에서 발견된 여인상들도 중요한 원시미술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은 하나 같이 가슴과 생식기가 강조되어 있고, 현대 여성의 미의 기준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스·로마시대 이후의 미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이런 작품이 왜 비너스라 불리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작품과 시대를 바라보는 객관적이고 다양한 시각이 결연된 결과일 수 있다. 수천 년 전 또는 수만 년 전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대에는 이런 풍만하고 출산에 유리한 몸이 모든 여성의 바람이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원시미술은 이처럼 그 시대 사람들의 행동과 염원 등 다양한 측면을 담아낸 결과물이었다. 이들이 이런 작품을 남기면서 후세에 전달되고 그들이 그곳에 그 시대에 살았었음을 기원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집트 그리고 그리스 등의 고대 미술로 계승되었고, 수만 년이 지난 현대까지도 그 영향력이 미치고 있다. 다양한 방법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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