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조각의 시작, 쿠로스
보통 그리스를 이야기할 때 그리스 조각품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그만큼 조각된 인물들의 외모도 잘 표현되었고 그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이 처음부터 멋진 작품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그리스인들이 최초로 만들었다고 꼽히는 조각품은 기원전 2500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키클라데스 조각이다. 하지만, 제작 시기가 그리스 문명과 맞지 않고, 조각의 수준도 많이 떨어지는 이유로 그리스의 유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들도 많다. 이런 논란 없이, 그리스 예술품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손꼽히는 작품은 쿠로스(Kouros)라고 부르는 인물상이다.
쿠로스 조각
쿠로스는 남자 또는 청년을 뜻하는 그리스어로서 청년을 새긴 그리스 조각을 쿠로스라고 통칭한다. 미라를 보면서 이집트와 이집트 미술을 떠 올리듯이, 쿠로스를 보면 그리스 조각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연구자들은 그리스 본토와 그들이 점령했던 식민지까지 합치면 약 2만여 개의 쿠로스가 조각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주로 그리스 신전이나 시가지 또는 묘지에서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쿠로스가 이렇게 많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며, 죽은 사람을 기리거나, 운동 경기에서 승리한 사람을 기념할 때 또는 신에게 바치는 봉헌 등 많은 이유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차이와 공통점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전시된 쿠로스는 기원전 600년경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초기 그리스 조각품이다. 쿠로스를 보면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작품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이 떠오른다.
먼저 쿠로스는 얼굴 크기에 비해 눈이 상당히 부각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눈이 강조된 것은 메소포타미아의 작품에서 그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아래는 메소포타미아 시대 아카드 제국을 일군 사르곤 왕으로 추정되는 두상이다. 위 쿠로스와 같이 눈이 상당히 강조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위엄 있는 수염과 단정하게 마무리한 머리는 쿠로스의 땋은 머리와 많이 닮아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쿠로스가 메소포타미아 조각품의 영향을 받은 것을 반증한다고 하겠다.
쿠로스 조각품은 이집트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집트의 라노페르의 조각과 쿠로스를 비교해 보면 왼발을 앞으로 내민 구도, 어깨를 펴고 손을 옆에 딱 붙인 자세, 정면을 향해 꼿꼿이 세운 고개 등이 너무도 닮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집트 미술의 큰 특징 중에 하나인 그리드에 따른 인체비율을 쿠로스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적용해 보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들어가는 그리드의 개수가 이집트의 미술품에 적용된 비율과 동일함을 볼 수 있다. 이는 그리스인들이 쿠로스를 제작할 때에 이집트의 그리드 법칙을 이어받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볼 때에 그리스 조각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문화적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았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 미술은 이들 문명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모방과 도전의 반복을 통해 발전과 진화를 이루었다. 서양 미술사의 거장 곰브리치는 이를 두고 '위대한 각성'이라고 표현했는데, 사실적이고 완성도 높은 이집트 조각에 비해 왠지 수준이 떨어지는 그리스의 쿠로스를 보면서 '그리스 조각의 수준이 낮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이집트 조각품의 목적은 그 대상의 내세사상을 염두에 둔 작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각품이 절대 훼손되면 안 되었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조각품을 완전히 독립시키지 않고 뒷면과 아래 등을 원래 돌덩어리에 유지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반면, 그리스 조각은 신께 바치는 제물이며, 그 대상을 직접적으로 기념하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팔과 다리가 온전히 분리되어 표현될 수 있었다. 이런 것을 두고 그리스 미술의 독립을 향한 첫 실험이라고도 일컫는다.
남성만 모델로?
또 그리스는 인류 최초로 민주주의를 꽃피운 문명이지만, 그 사회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여성과 아이(약 14만 명) 그리고 노예(약 40만 명)와 외국인(7만 명)에 비해 남성들(4만 명)에 대한 사회적 지위가 월등히 높아서 그들만의 민주주의였을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많다. 이런 관념적인 바탕으로 그리스인들은 여성의 신체는 신성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며, 남자들은 신에 가까운 인간이라는 영웅으로 표현하였다.
이를 반영하듯, 실제 쿠로스는 젊은 남성들만이 대상이었으며 머리와 목걸리를 제외하고는 온전히 벗은 누드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옷을 입고 있던 이집트 미술과도 확연하게 차이 나는 것이다. 젊은 남성의 누드를 조각품의 대상으로 표현한 것은 그 시대의 남성 간의 동성애와 같은 사회적 현상도 짐작케 하며, 남성들은 신에 가까운 인간들이며 그들은 신과 같이 누드를 입을 수 있는 자격(옷을 벗어도 된다)이 있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남성들 스스로가 신성하다고 여겼고, 그런 그리스 시대 사상이 그들의 조각품에 오롯이 새겨진 것이다.
이를 통해 그리스 미술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아류가 아니라, 온전히 독립된, 다른 차원의 작품이 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상에 온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는 것을 확인함과 동시에,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다 보면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다는 가르침을 그리스 초기 조각을 통해 다시금 배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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