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 섬, 테세우스 신화와 그리스 문화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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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야기

크레타 섬, 테세우스 신화와 그리스 문화의 시작

by DDing선생 2023.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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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타 섬은 그리스 남부의 에게 해와 지중해에 걸쳐 있는 섬으로, 그리스에서는 가장 크고 지중해에 위치한 섬 중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이다. 크레타 섬 남쪽의 가브도스섬은 유럽의 최남단으로 분류된다. 유럽은 물론 전 세계인이 찾는 휴양지로 유명한 크레타 섬은 풍경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하고,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배경이 되는 곳이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올리브 나무가 아직도 열매를 맺는 곳이다. 하지만 크레타 섬의 아름다운 풍경과 겉모습만 감상하고 끝낸다면 이 섬의 충분한 매력을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고대 그리스 문명이 시작된 크레타 섬의 숨은 매력을 말이다. 

<크레타 섬 이라클리오의 항구 전경, 출처: 나무위키>

크레타 섬, 전설의 섬 아틀란티스

아틀란티스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책에 지상의 낙원으로 나오는 곳이다. 그곳의 사람들은 신과 인간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데, 세대가 이어지면서 인간의 피가 점점 많아지고 신의 속성은 약해져서 사치와 환락에 빠지게 되었다. 이에 분노한 신들이 대지진과 홍수를 내렸고, 결국 아틀란티스는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이 아틀란티스가 크레타 섬이었다는 주장과 가능성이 만만치 않다. 

 

그리스 본토와 크레타 섬 사이에 있는, 산토리니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테라 섬에서 기원전 1500년 경에 화산 폭발이 있었다. 그 여파로 아름다운 크레타 섬이 화산재로 뒤덮이고 결국 그리스 문명의 시작점인 미노아 문명이 멸망하는 계기가 되었다. 화산의 여파에도 어느 정도 지속되었지만 옛 영광을 되찾지 못했고, 결국 기원전 1450년경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 문명에 정복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화려했던 미노아 문명과 크레타 섬을 연구하면서 많은 학자들이 전설로 전해지는 아틀란티스가 크레타 섬이라고 여기는 이유인데,  또 최근의 고고학계에서는 화산 폭발설보다는 미케네인들의 침공에 의한 문명 파괴가 더 유력한 정설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크노소스 궁전과 미노타우로스 신화 

이런 테라 섬의 화산 폭발은 미노아 문명을 몰락시키고 크레타 섬 주민에게는 큰 불행이었지만, 고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축복과도 같은 결과가 되었다. 크레타 섬과 그 주변의 미노아 문명이 테라 섬에서 날아온 화산재에 묻혀 오롯이 보존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보존된 미노아 문명의 대표적인 유적이 바로, 크노소스 궁전이다. 

<크노소스 궁전의 상상도, 출처: 나무위키>

기원전 1700년경에 지어진 이 궁전은 가로와 세로가 1500미터에 달하는 큰 규모로, 궁전이라기보다는 자그마한 도시에 더 가까워 보인다.. 미노스 왕이 살았던 곳으로 전해지는 크노소스 궁전은 중앙정원을 중심으로 1000개가 넘는 방이 배치된 복잡한 설계로 미궁(미로의 궁전)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이 이야기는 그 유명한 미노타우로스와 테세우스의 신화와도 연결된다.

 

'포세이돈 신은 자신의 도움으로 크레타의 왕이 된 미노스 왕에게 소를 제물로 바치도록 했다. 미노스 왕은 바칠만한 제대로 된 소가 없다고 하자, 이에 포세이돈 신이 직접 파도로 하얀 황소를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미노스 왕의 부인인 파시파에 왕비가 그 소를 너무 마음에 들어 해서 왕은 다른 허름한 소를 포세이돈 신에게 제물로 바치고 그 소를 왕비에게 주었다. 이에 화가 난 포세이돈 신은 왕비가 그 하얀 황소를 사랑하게 만들어버렸고, 사랑에 빠진 왕비는 전설적인 조각가이자 발명가인 다이달로스가 만들어 준 소의 모형에 들어가서 하얀 황소에게 접근했고 결국 그들과의 사이에서 괴물이 태어났다. 그 괴물이 바 머리는 소의 모습이고 몸은 사람의 형태를 한 반인반수 '미노타우로스'이다.

<Tom Kidd의 '미노타우로스와 싸우는 테세우스', 출처: 나무위키>

태어나자마자 거대해진 미노타우로스는 사람들을 먹어치웠는데, 이 험악한 괴물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미노스 왕은 크노소스 궁전에 미로를 만들어(이 미로 역시 다이달로스의 작품이다) 그를 거기에 가두어버렸다. 미노스 왕은 아테네에서부터 사람을 데려와 미노타우로스에게 먹이로 주었다. 훗날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는 크레타의 공주 아리아드네의 도움으로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미로를 탈출하여 자신의 백성들을 지키게 된다.'(그리스 신화 중 미노타우로스와 테세우스 관련 내용)

 

그리스와 이집트는 물론 멀리 스페인까지 교역을 확대했던 크레타는 지중해 중심 문명의 핫스폿이었다. 다양한 교역과 해상무역을 통해 일군 부를 바탕으로 크노소스 궁전 같은 멋진 도시를 지었는데, 메소포타미아의 도시국가가 달리 성벽은 따로 쌓지 않았으며 대신 바깥쪽 건물과 건물을 연결시켜서 방어 기능을 대신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궁전은 1900년 영국의 고고학자 아서 에반스에 의해 다른 많은 유물들과 함께 발굴되었는데 문제는 발굴에서 그치지 않고 자의적으로 해석한 대로 크노소스 궁전과 크레타 섬을 복원한 것에 있었다. 궁전 곳곳에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울긋불긋한 색깔을 칠하기 했다. 또 각종 벽화도 자신의 생각대로 복원하고 관련 자료도 남아 있지 않은 한 탓에 원래의 모습을 추정하는 것조차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즐겁고 활기찬 미노아 미술의 특징을 볼 수 있는 작품들을 확인할 수 있다. 돌고래와 물고기가 그려진 왕비의 메가론과 황소를 주제로 한 <황소 뛰어넘기>의 작품은 크레타인들이 삶을 흥겹고 유쾌하게 만들어가고자 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아크로티리의 소년 벽화

앞서 화산 폭발로 설명했던 테라 섬의 도시 아크로티리에서 발견된 한 벽화를 통해 이집트를 비롯한 고대 미술과는 다른 새로운 문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모습을 대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아크로티리의 소년 벽화>이다. 

<아크로티리의 물고기를 잡은 소년 벽화, 출처: Wikimedia commons>

기원전 150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정면성의 원리에 따른 이집트 벽화를 바로 떠올릴 수 있다. 옆을 보고 있는 얼굴, 정면을 향한 눈과 상체 또 옆으로 향한 하체와 다리 등 너무도 그림의 구조가 유사하다. 이를 통해 미노아 문명이 이집트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의 그림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1. 일반인에게 정면성의 원리를 적용했다.

이집트 그림에서 정면성의 원리는 중요한 사람을 대상으로 그릴 때만 사용하였다. 하지만, 이 테라 섬의 그림은 일반적인 대상을 그리는 데에 정면성의 원리를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엄격한 정면성의 원칙이 이집트 미술을 엄숙하게 만들었다면 이 그림에서는 아주 가벼운 일상을 그리는 데에 충실했다는 큰 차이가 있다. 

2. 완벽한 누드를 보여주고 있다.  

또 이집트 벽화와 커다란 차이점은 완전히 옷을 벗은 누드라는 것이다. 영국의 미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는 '누드는 서양성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며, 신체의 아름다움을 당당하게 표현한 것이 누드라고 주장했다. 이 그림은 이러한 서양 미술의 핵심을 보여주는 최초 작품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림을 바라보면서 다양한 감상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가장 분명한 건 이 작품이 이집트 양식을 가져왔지만 크레타 섬과 미노아 사람들의 그들만의 개성적인 코드를 표현한 작품의 하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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