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포타미아 시대 미술, 도시 국가와 지구라트
고대 문명의 발상지 중에 하나인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은 현대 터키, 이란 그리고 이라크 지역을 지나 페르시아만까지 가로지르는 강이다. 이 두 강 유역에서 농경문화가 정착되었고 문명이 발생하게 되었는데, 이 문명을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라 한다.
인류 역사를 돌아볼 때 메소포타미아에서 최초로 발명된 것이 많다. 달력, 바퀴, 돛단배, 화폐, 맥주 등이 이 시대에 만들어졌으며 그 보다 더 중요한 도시문화가 이곳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되었다. 이집트의 테베가 기원전 1200년경에 인구 5만 명의 도시였던 것에 비교해 볼 때, 메소포타미아의 고대도시 우르크는 기원전 3000년 경에 인구가 5만 명이었고 기원전 500년에 인구 15만 명의 바빌론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에는 여러 도시들이 만들어졌고, 이들 도시를 통해 메소포타미아의 문명이 본격화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메소포타미아의 미술은 도시의 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지구라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인류 최초의 도시 중 가장 오래된 도시가 페르시아만 인근의 에리두와 우르크이다. 그중에서 과거의 흔적인 그나마 많이 남은 곳은 우르크이다. 우르크는 도시 전체가 성벽으로 둘러싸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차탈회위크와 같은 신석기시대의 촌락의 형태와는 완전히 다른 규모였던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우르크 도시를 대표하는 건물인 아누 신전은 백색신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하얀색의 벽돌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현재는 그저 모래더미로만 남아있지만, 하늘의 신인 아누(안)를 모셨던 사원으로서 높은 단 위에 신전이 올라가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단은 사각뿔 모양으로 생겼고, 각 꼭짓점은 동서남북 네 방위를 가리키는데 이를 지구라트(Ziggurat)라고 한다.

지구라트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유적으로서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세워진 신전 또는 제단이라고 할 수 있다. 위로 갈수록 줄어들며 쌓이는 계단형 탑으로, 돌이 아닌 진흙을 구워서 만든 벽돌로 건축되었다. 이는 큰 바위를 구하기 어려운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특수한 형편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여러 개의 단으로 이뤄진 지구라트의 제일 높은 정상에는 제단이 놓여 있으며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왕이 신과 대화하기 위해 올라가는 산으로 여겨졌다. 지금까지 30개 이상의 지구라트가 발굴됐는데, 위에 언급한 우르크의 백색신전은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더 오래된 기원전 3000년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의 이라크 지역인 우르는 도시 내부 상주인구만 6만 5000명, 도시 주변의 인구까지 합치면 약 10만 명에 다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기원전 3600년경에 세워진 인류 최초의 메트로폴리스로 불릴만하다. 우르의 중심부에는 도시의 수호신인 달의 신 난나를 모시는 지구라트가 세워져 있다. 기원전 2000년경에 만들어진 최초의 유적은 파괴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것은 기원전 600년경 신바빌로니아 제국 시대에 재건된 것이다.
이 지구라트는 계단식 피라미드와 많이 닮았는 파라오의 무덤이었던 피라미드와는 달리 도시의 수호신을 섬기기 위한 신전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바벨탑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지구라트 중에 가장 유명한 이름은 바로 바벨탑일 것이다. 성경에 언급되어 더 유명해진 바벨탑은 기원전 1894년에 세원진 바빌론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의해 많은 기록이 남았는데, 바빌론의 지구라트에 대해서도 상세히 언급되어 있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바빌론의 지구라트는 네모난 여덟 개의 단으로 만들어졌고 가로와 세로가 각각 90미터이며 높이는 98미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는 현대 건물로 따지면 30층짜리 빌딩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기원전 6세기경 바빌로니아의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유대민족을 정벌한 뒤 살아남은 유대인들을 포로로 잡아 바빌론으로 끌고 와 노예로 삼았다고 한다. 상처와 허기로 녹초가 되었을 유대인 포로들이 이 거대한 도시에 들어와 100미터에 달하는 건물을 보았을 때 느꼈을 위압감이 어땠을까?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에 대한 이야기에 보면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쓰게 되었다'라는 대목이 있다. 메소포타미아 다른 도시들의 지구라트와 같이 바벨탑 역시 진흙으로 만들어진 벽돌을 사용하였고, 그와 별도로 역청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성경에 나와 있는데, 이는 일종의 아스팔트의 효과를 내는 천연 재료로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사용되던 방수재라고 볼 수 있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의 불규칙적인 범람으로 이들은 항상 홍수의 위험에 처해있었고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대비책으로 역청을 사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지구라트뿐만 아니라 일반 주거지에도 사용되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성경 등에서만 전해오던 바벨탑이 실존했던 건물인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논란이 있어왔다. 사실 그 논란은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실제로 바벨탑이 존재했었다는 강력한 증거가 발견되었다. 바로 노르웨이 연구자 마틴 쉐인(Matin Schoyen)이 내놓은 현무암으로 된 '바벨탑 비석(지구라트 카딩기라키)’이 그것이다. 이 비석에는 쐐기문자로 '바벨탑 비석’이라는 글자가 분명히 새겨져 있고, 탑의 입면도와 평면도, 그리고 네부카드네자르 2세(성경에서는 느부갓네살)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바벨탑이라는 명칭이 기록된 유물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며, 이로써 그리스 등 고대 기록에만 남아있던 바벨탑이 실제로 존재감을 드러내게 되었다.
'미술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크레타 섬, 테세우스 신화와 그리스 문화의 시작 (0) | 2023.08.20 |
---|---|
메소포타미아 시대 미술, 페르시아의 영광과 미술 (0) | 2023.08.19 |
고대 이집트 미술, 영화로 다시 태어나다 (0) | 2023.08.15 |
고대 이집트 미술, 람세스 2세와 카르나크 대신전 (0) | 2023.08.14 |
고대 이집트 미술, 왕가의 계곡과 투탕카멘 (0) | 2023.08.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