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타미라 동굴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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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야기

알타미라 동굴 벽화

by DDing선생 2023.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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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미라 동굴 벽화는

1868년에 처음 발견된 알타미라 동굴(cueva de Altamira)은 스페인 칸타브리아 지방의 도시 산탄데르에서 30km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전망'이라는 뜻의 이 동굴은 프랑스, '라스코 동굴 벽화'와 함께 후기 구석기시대 미술작품을 대표하는 벽화를 담고 있는 역사적 유적지이다. 

 

동굴의 총길이는 295m에 달하며, 여러 방향으로 꼬여 있는 형태로 높이는 2m~6m의 편차를 보인다. 동굴은 그 옛날 가스트로 지형인 주변이 무너지면서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동굴의 위치가 해안가에 가깝고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이라 동물들이 동굴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이며, 그 흔적이나 잔해가 많이 남아있다. 

 

원시인의 흔적은 동굴의 입구 쪽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림은 숯, 황토, 정철석 등과 자연염료를 주재료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동굴과 돌출된 바위와 돌 등의 형태를 이용한 그림을 통해 투시성을 활용한 이들의 미적 감각을 짐작할 수 있으며, 일부에서 볼 수 있는 명암법은 현대 3D기법과 흡사한 효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알타미라 동굴의 들소 벽화, 출처: 위키피디아>

 

알타미라 동굴의 발견

알타미라 동굴은 1868년 사냥꾼인 모데스토 쿠빌라스(Modesto Cubillas) 의해 발견되었고, 이 동굴의 벽화를 학계에 처음 보고한 사람은 그 근방에 살았던 귀족인 마르셀리노 산즈 데 사우투올라(Marcelino Sanz de Sautuola)이다. 아마추어 고고학자였던 그는 이 동굴의 역사적 흔적을 연구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고 석기 몇 점과 동물의 뼈를 발견하는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8살 된 자신의 딸과 함께 동굴을 탐험하던 중 아빠의 고고학적인 탐사에 지루해하던 딸은 아빠와 다른 방향으로 동굴을 돌아다니게 되었다. 그러던 중 그녀는 동굴의 천장에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그림을 발견했고 아빠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했다. "아빠, 황소야." 그 소녀가 이 인류의 역사적·미술사적 중요한 흔적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이다. 

 

1880년 사우투올라는 자신이(사실은 딸이) 발견한 알타미라 동굴의 그림을 구석기시대에 기인한 산탄데르 지방의 선사 시대 유물에 대한 설명 브로셔에 발표했다. 하지만 그의 명확한 근거와 해석에도 불구하고 그 그림을 본 당대의 진화론자, 역사학자, 고고학자들은 그의 접근방식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동굴의 그림들이 선사시대 사람들이 그린 것 치고는 너무도 선명하고 뛰어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심지어 학자들은 그가 지역 화가를 동원해 거짓으로 그림을 그린 것으로 음해하는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 

 

여러 선사시대 그림이 이어서 발견되기 시작한 1902년 이후가 되어서야 알타미라 동굴 벽화의 진가가 인정받게 되었다. 사우투올라를 공개적으로 험담했던 여러 학자들은 잘못을 인정했으나 이미 그는 자신의 업적에 따른 어떠한 영예도 누리지 못하고 죽은 후였다. 이후 알타미라 동굴 벽화는 198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높이 인정받고 있다.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

석회암 지질의 알타미라 동굴은 한 갈래를 따라 이동하면 다른 갈래로 연결되는 복수의 갈래 형태이다. 천장이 높고 벽면이 틈새로 나뉘어 일부 구간은 자연적인 협곡과 비슷한 모습을 띄고 있으며 내부는 크게 동굴 입구, 폴리크롬룸(Polychrome room, 또는 그레이트 룸)과 갤러리로 구분된다. 

 

동굴 입구는 사람들이 살던 곳으로 추정된다. 많은 학자들은 동굴의 이 부분에서 인간이 활동했다는 증거로 동물의 뼈, 벽난로의 재, 칼, 도끼, 부싯돌 조각과 같은 잔해를 발견했다. 서로 다른 퇴적층에 위치한 여러 유형의 유적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동굴에 오랜 기간 동안 사람이 거주했다고 추측된다. 여러 가지 색상으로 칠해진 폴리크롬룸은 자연 채광이 들어오지 않는 공간인데, 입구와 폴리크롬룸은 Great Ceiling으로 불린다. 이 큰 공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좁은 복도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굴 끝에 위치한 갤러리 또한 좁은 공간이지만 그림과 암각화가 있다.  

 

알타미라 동굴을 거주지로 삼았던 36,000년에서 13,000년 사이에, 약 천년 동안 들소, 말, 사슴, 사람의 손 및 신비한 기호가 그려져 있으며, 전문가들은 각 시대를 거치며 이 동굴에 살았던 다른 시대의 사람들에 의해 그림이 지속적으로 그려져 왔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미적 표현은 동굴 전체에 걸쳐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집중된 곳은 폴리크롬룸이다. 

 

가장 오래된 작품은 폴리크롬룸의 지붕 오른쪽에 있으며 말과 사람의 이미지와 점 등 추상적인 모양 등을 담고 있는데, 이 그림은 주로 목탄으로 그려졌다. 암벽의 자연스러운 윤곽에 따라 눈과 입을 그려서 만든 '마스크'도 있으나 이 시기의 대부분의 그림은 사슴을 표현하고 있다.

 

가장 큰 작품은 길이가 2m가 넘는 암사슴 그림과 1m 25cm~1m 70cm에 달하는 말과 들소 그림이며, 대부분 25가지 색상(대부분은 빨간색과 검은색)으로 그려져 있고 드로잉 기법은 부싯돌로 벽을 조각한 후 목탄으로 검은 선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머리카락 같은 디테일은 목탄 연필로 만들고 눈이나 뿔 같은 요소는 조각했으며, 단순해 보이지만 지붕의 요철과 갈라진 틈은 동물에게 입체감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부 들소는 배의 색 변화를 검은색 안료로 표현하였고, 목탄을 사용하여 털이나 혹을 자세히 표현한 것을 볼 수 있다.

 

좁은 갤러리에는 들소, 사슴 등 동물의 얼굴을 나타낸 마스크 세트가 있다. 원근감을 살려 눈, 코 그리고 입을 나타낸 선의 움직임은 단순한 요소로 얼굴 전체를 만든 능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와 피카소

 

알타미라 동굴 벽화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은 동굴의 벽과 천장을 수놓고 있는 소의 모습들이다. 황소와 들소로 보이는 이들은 웅크리고 또는 달리며 뛰노는 소들을 불룩하게 튀어나온 돌 모양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묘사하여 그 입체감과 생동감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이런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를 보고 감명을 받은 세계적인 거장 피카소(Pablo Picasso)는 1945년 이후 '황소' 연작을 그렸는데 함께 보면 두 작품이 흡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피카소는 이런 알타미라 동굴의 소 그림들을 보고 "인류는 2만 년 동안 나아진 게 없구나"라는 말을 남겼다. 그 처럼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통해 구석시 시대의 원시인들의 미적 감각이 현대인에 비해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알타미라 동굴과 라스코 동굴의 벽화는 모두 후기 구석기시대의 유산으로 선사시대에 도구의 다양성과 전문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이 시대 원시인은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동굴의 벽화는 하나같이 컴컴한 공간에 그려져 작업 또한 상당히 어려웠을 텐데, 그 어려운 환경을 무릅쓰고 이들은 놀라운 그림을 여기저기에 남겨 놓았다.

 

이런 선사시대 인류의 노력은 단지 미적인 만족을 추구한 것은 아니며, 자신이 속한 무리가 원하는 무언가를 갈구하는 주술적인 목적이 훨씬 강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자기들이 잡고 싶은 동물, 이겨내야 할 대상들을 동굴에 그려놓고 그 결과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보는 것. 이런 모습은 자신이 시기하는 대상, 이겨야 하는 상대나 집단을 주술적 방식으로 괴롭히고 공격함으로써 그들에게 고통을 주고 심지어 목숨까지 뺏곤 했던 전근대사회의 모습과도 일맥상통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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