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조각상 특징과 진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조각이라고 하면 우리는 '원반 던지는 사람(디스코볼로스)'처럼 다이내믹한 자세를 하고 있거나, '미로의 비너스상'과 같은 아찔한 누드상을 떠올리곤 한다. 이런 작품이 그리스 시대를 대표하는 조각인 것은 사실이지만 하루아침에 그리스 조각이 '짠~'하고 이런 작품들로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 조각품의 원본은 거의 남아있지 않아서 정확한 설명에 한계가 있겠지만, 앞서 보았던 쿠로스와 코레와 같은 작품이 어떻게 진화했고 그 조각들에 어떤 역사적 의미가 있었는지 알아보자.
제작자의 이름이 등장
앞서 작성한 블로그에서 고대 그리스 초기 조각품인 쿠로스와 코레는 어떤 특징들이 있는 함께 알아보았다. 그런데 많은 작품들이 발견된 장소라던지 기록에 의존한 이름으로 불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크리티오스의 쿠로스'에서 보듯이 드디어 작품 제작자의 이름이 알려지며, 크리티오스라는 개인이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창을 든 남자(도리포로스)'의 작가 폴리클레이토스도 당대 최고의 조각가 중 한 명이며, 그의 작품에는 그의 이름이 함께 기억되고 있다.
이전까지의 고대 그리스에서의 조각은 상대적으로 낮은 신분의 사람들이 주로 만들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렇게 이름이 붙은 조각품이 나오게 된 것은 그리스 조각 예술의 발전과 변화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이전에 무명의 작품과 이름이 붙은 것에는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첫째, 제작자의 개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름이 붙은 작품들은 조각가의 개성과 기술을 강조하는 경향이 생겼다. 이전에는 작품보다는 주제와 대상에 더 집중했기 때문에 제작자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었다. 그러나 이름이 붙은 작품에서는 작가의 명성이 작품의 가치와 연결되게 되었다.
둘째, 제작자의 스타일이 다양해졌다.
제작자의 이름이 붙은 작품들은 그들의 다양한 스타일이 보이게 되었다. 폴리클레이토스의 작품은 인체의 대칭과 균형을 강조하며 자연스러운 우아함을 강조하는 '도리포로스 스타일(Doryphoros Style)'을 보였고, 크리티오스의 작품은 대상의 동적인 움직임을 잘 나타내며 몸의 기운과 활기를 묘사하는 '쿠로스 스타일(Kouros Style)'로 표현되었다. 이런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의 등장은 조각 예술의 가능성을 확대시켰다.
셋째, 제작자의 역할이 돋보이게 되었다.
이름이 붙은 작품들은 제작자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었다. 이전의 조각을 한 사람들이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면, 이름이 붙은 작품의 제작자는 예술가로서의 입지가 더욱 단단해지게 된 것이다.
넷째, 기술과 혁신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작품에 자신의 이름이 붙게 되면서 기술적인 완성도와 혁신에 대해 더욱 집중하게 되었고, 이런 요소가 그리스 예술을 발전시키는 데에 큰 자극제가 되었다.
조각에 개성이 담기다
무표정한 얼굴과 경직된 차렷자세의 쿠로스와 코레의 모습에 비해, 크리티오스와 네시오테스가 함께 만든 것으로 전해지는'하르모디우스와 아리스토게이톤(참주 살해자들)'을 비교해 보면 많은 것이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원본은 청동으로 만들어졌으나 소실되었고, 현재 남은 것은 로마시대의 복제품이다.
아테네의 독재자 히피아스의 동생 히파르쿠스를 살해한 두 사람을 조각한 작품으로서 일명, '참주 살해자'로 불린다. 이들은 히피아스에 의해 처형당했는데, 이후 아테네에 민주주의가 도입되면서 두 사람은 아테네에 민주주의를 가져오도록 만든 영웅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이 두 조각상의 얼굴을 보면 무표정한, 마치 가면과 같은 모습의 쿠로스에 비해 얼굴에 두 사람의 다양한 표정과 특징이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젊고 깔끔한 얼굴의 하르모디우스와 수염도 많고 나이가 들어 보이는 아리스토게이톤의 얼굴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작품의 대상이 누구인지 알아보게 만든 조각을 추상 조각이라고 하는데 고대 그리스 작품에서는 보기 드문 작품의 경향이다.
그리스 조각에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을 새기지 않았던 것은 민주주의 경향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개인이 두드러지는 것을 경계하고 공동체로서의 민주주의를 추구하려고 하는 사회적 성향이 반영된 결과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독재자의 출현을 경계했다고도 할 수 있는데, 독재자의 동생이 히 파르쿠스를 살해한 두 사람을 사실적으로 조각한 것은 예외적이라고 하기에는 우리가 모르는 숨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또, 청동 작품을 통해 조각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운동감과 디테일을 표현하였다. 점토상과 석고틀을 이용해서 만든 청동 작품은 옷의 주름 하나하나와 머리카락과 수염의 세세한 부분까지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돌의 하중 때문에 자연스러운 표현이 제한적이었던 조각에 비해 청동은 표현이 보다 자유로웠다.
대표적으로 기원전 46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사(리아체 전사상) 청동상을 들 수 있는데, 돌을 깎아 만든 조각과는 다른 청동작품의 섬세함을 확인할 수 있다.
디테일이 살아나다
위에서 보았던 '하르모디우스와 아리스토게이톤' 조각상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리스 조각에서 디테일한 부분들이 상당히 발전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여성을 조각한 작품들에서는 그들이 입은 옷에 대해 다양하게 표현되었는데, 옷자락이 몸에 달라붙어서 떨어지듯이 내려오는 형식의 기법을 사용한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를 '젖은 옷 양식'이라고 부르는데 기원전 5세기에 시작하여 한동안 지속되었다고 전해진다.
남성의 누드 조각이 왕성했던 것에 비해 여성의 나신을 조각하는 것에 보수적이었던 그리스가 여성 조각을 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 '크니도스의 비너스'와 '밀로의 비너스'가 대중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이들 작품들은 신을 빗대어 여성의 신체를 에로틱하게 표현했던 작품으로서 그 당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직접 찾아와서 관람을 했던 것으로 기록될 정도로 센세이션 했었다.
'크니도스의 비너스'에 비해 약 100년 정도 앞선 기원전 440년 경에 제작된 '죽어가는 니오베의 딸' 조각상은 젖은 옷 양식과 여성의 나신이 함께 잘 표현된 작품이다. 앞선 두 개의 비너스 작품이 고고한 자태를 뽐내듯 했다면, 이 작품은 마치 춤은 추거나 연기를 하는 듯한 역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 작품은 아르테미스 여신의 화살을 등에 맞아 고통스러워하는 니오베의 딸의 모습을 조각한 작품 <죽어가는 니오베의 딸>이다. 온몸을 비틀며 아주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조각이 연기를 하는 듯하다. 이전의 쿠로스와 코레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표현력이 그리스 조각의 진화를 이끌고 있었다.
그리스 철학은 후대로 갈수록 전달하는 이야기가 강해지고, 조각의 표정과 모습이 더욱 자연스러운 느낌을 전달하게 되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에 아네테는 물론 그리스 전체의 힘이 떨어졌는데, 전쟁으로 지친 사람들이 무대를 통해 평화를 얻고자 연극이 크게 유행했다. 이런 아테네와 그리스 전체의 사회적인 변화가 미술작품의 변화에까지 미쳤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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