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미술이 헬레니즘으로 퍼져나가다.
헬리니즘이란 어원은 '그리스어를 말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그리스의 고유문화가 오리엔트 문화와 함께 융합되어 만들어진 그리스의 사상, 문화, 정신, 예술 등을 일컫는 말이다. 그 기간은 알렉산드로스 3세(알렉산더 대왕)가 사망하던 시점부터 이집트가 로마에 의해 합병되었던 기원전 323~30까지의 대략 3세기에 이른다. 헬레니즘 문화는 한 때 에게해 주변의 지중해 연안의 세계를 지배하였고, 카르타고 등의 다른 나라에까지 확산되었으며 그 영향력이 서쪽은 영국, 동쪽은 인도의 펀자브 지방에까지 달했다.
알렉산더 대왕과 새로운 경향
고대 그리스는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사회였다. 이런 사상은 미술 전반에도 고스란히 담겨 개인을 대상으로 한 작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즉, 어떤 한 개인이 우상이 되거나 신격화되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하지만,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의 전쟁을 비롯한 도시국가들 간의 다툼은 그리스 전체의 쇠약을 초래했고, 결국 떠오르는 제국 마케도니아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스의 전역을 장악한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는 그리스의 문화를 파괴하기보다 존중했고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집중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의 문화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추구했던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정신을 온전히 이어받지는 못했다.
마우솔레움(Tomb of Mausolus)은 기원전 353년에 현재 튀르키예 보드룸 지역인 할리카르나수스에 지어진 거대한 건축물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등과 함께 고대 7대 불가사의로 꼽히기도 하는 이 건축물은 페르시아의 왕 사트라프 마우솔로스와 그의 아내인 아르테미시아 2세가 묻힌 무덤이다.
마우솔레움은 그 높이가 45미터에 달하고 각 면에는 그 당시 저명한 조각가들의 작품으로 둘러싸여 있다. 11세기~15세기 사이에 일어난 강한 지진으로 파괴된 것으로 전해지며 건물의 꼭대기에 세워졌던 2.3미터의 말 조각이 잔해로 전해져 이 건물의 규모가 얼마나 어마어마했을지 짐작하게 한다.
민주주의 정신이 바탕이 된 그리스 미술은 특정 개인을 위한 작품을 거의 제작하지 않았다. 하지만, 페르시아와의 전쟁과 마케도니아의 점령 이후에 그리스에 나타난 새로운 경향인 헬레니즘을 바탕으로 한 문화에서는 개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개인을 위해 이렇게 거대한 무덤을 만든 마우솔레움은 이러한 경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마우솔레움에서 발견된 또 다른 잔해인 마우솔로스 조각상을 통해서도 기존의 그리스 문화와는 다른 개인을 영웅시하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위대한 정복자로 불리는 알렉산더 대왕(알렉산드로스 3세)을 대상으로 한 작품들을 통해 그 경향이 확연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전속 화가, 조각가 그리고 세공사까지 있었다고 전해지는 알렉산더 대왕의 모습을 담은 작품은 제작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사자 갈기 같은 헤어스타일이나 푹 들어간 눈에 솥은 콧날은 비슷한 모습을 담고 있다. 서른셋이라는 젊은 나이로 요절한 까닭에 청년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도 특징이다. 이러한 영웅적인 모습의 알렉산더대왕을 그린 작품은 살아있는 때는 물론 죽어서까지도 넓은 영토를 통치하는 데에 활용되었다.
알렉산더라는 영웅이 있고, 당신들은 그 영웅에 의해 독재자의 지배로부터 벗어났으며, 그의 통치를 받고 있다는 것을 그의 분신과 같은 미술작품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새겨진 주화는 미술작품을 활용한 통치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알렉산더 대왕을 새긴 다양한 주화는 각 지배지의 특색에 맞춤형으로 제작되어 활용되었는데, 이집트에서 사용된 주화가 대표적이다.
머리에 숫양의 뿔을 하고 있는 알렉산더 대왕의 모습은 이집트의 태양신 아몬을 상징한다. 알레산더 대왕의 사망 이후 이집트를 통치한 프톨레마이오스는 알렉산더 대왕의 대리인과 같은 역할이었고, 이 주화를 통해 영웅인 알렉산더 대왕의 인기를 이용해서 자신의 통치력을 높이는 데에 활용한 것이다.
레바논의 시돈 근처에서 발견된 알렉산더 대왕의 것으로 추정되는 '알렉산드로스 석관' 또한 이런 경향을 강하게 보여주는 헬레니즘 문화적 영향이 짙은 작품이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석관의 각 옆면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이수스 전투에서 페르시아 군과 싸우는 모습을 포함한 다양한 조각이 새겨져 있다. 이 또한 개인의 영웅담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서 그리스의 변화된 사고의식과 미술 경향을 볼 수 있는 대표적 작품이다.
이처럼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그리스 사회가 마케도니아에 의한 점령 이후 이전과는 다른 헬레니즘적 문화의 변화가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신화로 더욱 세심해지는 헬레니즘 미술
마케도니아가 점령한 이후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는 더 이상 아테네가 아니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를 포함한 동방 세계까지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은 각국에서 얻은 전리품과 영토별로 거둬들이는 세금이 엄청났는데, 그 모든 것을 저장했던 곳이 바로, 고대 그리스의 또 다른 강력한 도시 페르가몬이다.
페르가몬은 원래 현재 트루키예의 이즈미르 지역의 강력한 도시로서 헬레니즘 세계에서 아테네의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후기 그리스 시대의 예술의 꽃이 활짝 폈던 곳이다. 하지만, 페르가몬을 빛냈던 제우스 신전은 현재 독일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가로 폭이 35미터, 세로가 20미터에 이르는 이 작품은 이미 파괴되어 있는 파편들을 독일로 가져와서 그 조각을 맞춰 만들었다고 하며 이 신전을 전시하기 위해 박물관을 만들었다고 하니, 그 신전의 위용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만하다.
이 아테나 신과 제우스 신을 모시기 위해 만든 이 신전 벽면을 둘러싼 113미터에 달하는 프리즈는 이들 신들의 위용을 보여주는 활약상들이 조각되어 있다. 주된 스토리는 제우스가 이끄는 올림피아 신들이 거인족에 맞서 싸워 이기는 내용이다. 많은 부분이 훼손된 상태이지만, 훌륭한 그리스 미술의 수준을 볼 수 있다. 특히 벽에 붙은 부조임에도 조각작품으로 생각될 만큼 생생한 표현력을 보인다. 이런 조각품이 가능했던 것에는 손으로 작동하는 핸드드릴과 같은 조각활을 통해 깊이를 조절하며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주효했다.
헬레니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그리스 조각들에는 더욱 연극적인 요소가 담기게 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라오콘과 그 아들들'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라오콘은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트로이 전쟁에 나오는 인물로 트로이의 제사장이다. 그리스 연합군이 남긴 목마를 트로이로 들이면 안 된다고 반대를 했는데, 그리스의 편에 서있던 포세이돈 신의 노여움으로 뱀에게 물려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조각품을 보고 있으면 연극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고, 뱀에 감기고 물려서 반응하는 신체적인 변화에 대해 근육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현재 로마 바티칸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이 작품은 항상 많은 관람객이 그 앞을 떠나지 않는 명작 중에 하나이다.
이렇게 고대 그리스가 붕괴되면서 그들이 고수했던 민주주의에 입각한 미술 사조가 무너지고, 개인이 부각되는 작품들이 왕이나 영웅들을 중심으로 제작되게 되었다. 또한 조각품을 제작하는 기술적으로 발달하여 더욱 정밀하게 대상과 신체를 표현하는 표현력은 진일보를 이루게 되었다. 또한, 그리스가 유럽 문명과 미술의 모태로 손꼽히는 데에 중요한 요소인 '신화' 이야기도 다양한 미술품을 통해 그 가치를 더욱 높일 수 있게 되었던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였다. 이런 모든 요소들이 그리스 미술과 문화가 헬레니즘 문화로 진화하여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까지 번져간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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